인헌공 강감찬장군 약전
인헌공 강감찬(서기 948-1031)장군은 우리 오천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 중의 한 분이다.
장군은 고려 정종 3년 봉천동에서 삼한벽상공신 궁진(弓珍)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군은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처 문하시중까지 지냈으나 학자로서 보다는 무인으로서 재량을 발휘하였고,
저서로는 「구선집(求善集)」「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당시 고려는 친송
배요(親宋排遼)정책 때문에 요나라(거란)의 침입이 잦았는데 특히 현종 원년(1010)에 거란 성종이 40
만 대군을 이끌고 처들어왔다. 그때 조정에서는 굴복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장군은 홀로 항전을 주장
하면서 전략상 일시적인 후퇴와 설득을 통하여 적을 물러나게 하여 크게 국위를 떨쳤다.
다시 형종 9년, 거란 10만 대군이 침입하자 장군은 상원수가 되어 흥화진(興化鎭)에서 정예기병
1만2천명을 산기슭에 잠복시킨 뒤 적을 앞 뒤로 공격하여 도망하는 적을 귀주에서 선멸함으로써
살아간 자가 수천에 불과하였다. 이 싸움이 유명한 귀주대첩(龜州大捷)이다.
이 승리는 거란의 야망을 꺾어버리고 동북아시아 3국의 평화적인 관계를 정립시키는 계기가 되
었는데 이러한 장군의 업적은 당시부터 추앙받아 왔으며, 민족의 영웅으로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