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스크랩] 중국의 4대 명원 탐방 (제1탄 승덕 피서산장)

소촌 2014. 12. 3. 13:25

 

중국의 4대 정원

 

北京 頤和園(북경 이화원), 承德 避暑山莊(승덕 피서산장),

 

 蘇州 拙政園(소주 졸정원), 蘇州 留 (소주 류원) 인데.

 

2개의 황가정원이고 2개의 민가정원인데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이 바로 황가정원이고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이 민가정원에 속한다)

 

 

제1탄 황실정원

 

승덕 피서산장(承德避暑山莊)

 

 

북경에서 180km 떨어진 화북평원과 몽골고원의 접경지역에

 

몽골를 견제하고 사냥과 피서를 함께 할 곳으로 선택한 곳으로

 

만리장성과 같이 높고 긴 벽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열하행궁(熱河行宮), 승덕리궁(承德離宮)이라 불리우는

 

564만㎡나 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벽의 길이는 10㎞에 이른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1703년 세운 여름궁전으로

 

넓이는 이화원(頤和園)의 약 3배정도이다

 

 

강남(江南)의 풍경을 모델로 하여

 

청의 강희제(康熙帝) 1703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87년간에 걸쳐서

 

1790년 건륭제(乾隆帝) 때에 완성되었다.

 

 

오래된 궁전이지만

 

난무라는 나무를 사용하여 궁전을 지었기 때문에 보존도가 좋다

 

 

역대 황제의 대부분이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매년 4월에서 9월까지

 

 6개월 동안 이 지역에서 정무를 집행하였기 때문에

 

2의 정치의 중심지이고 황제를 알현하기 위하여

 

조선,몽골,만주,티벳 등 사절단이 모여들던 곳이다

 

 

청나라때 가장 번성했던 건륭과 강희황제로 인해

 

열하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특히 건룡황제 60세 생일과 70세 생일 건륭황제 어머니 80세를 치르면서

 

열하가 더욱 활기를 띄게되었다.

 

 

1860년 연합군의 전쟁을 피해 함풍제를 따라 승덕에 왔을때

 

서태후가 거처했던 방도 있고

 

 

또한 함풍제는 북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승덕에서 병사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황제가 거처하던 궁전과 업무보던 곳은 작지만

 

사냥터,,호수 모두 합하면 상당히 큰 황실정원이다.

 

 

 피서산장은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궁전구(宮殿區), 수원구(水苑區), 평원구(平原區)와 산구(山區)이다.

 

 산장 전체의 정문이며, 궁전구의 정문인 여정문(麗正門)

 

성벽의 일부이다.

 

 

외오문(外午門)을 지나면,

 

피서산장이라는 편액이 걸린 내오문(內午門)이 나온다.

 

 이 피서산장문을 들어서면 소나무를 심은 중정(中庭)이 나온다.

 

 

  그 앞에 담박경성전(澹泊敬誠殿)이 있다.

 

이 건물 뒤에는 사지서옥(四知書屋)이 있는데,

 

이곳은 황제가 대신을 불러놓고 일상적인 정무를 처리했던 곳이다.

 

 이 궁전구의 제일 구석에 운산승지루(雲山勝地樓)가 있다.

 

이 구석진 곳을 벗어나면 눈앞에 수원구의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수원구는 특히 강남의 뛰어난 풍경을 모방해서 조성했다고 하는데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하다.

 

수원구의 북쪽으로 평원구가 있고

 

이곳은 만수원(万樹園)과 영우사(永佑寺)가 주요 볼거리이다.

 

피서산장과 주위의 티벳불교 사찰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명소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熱河)일기의 일부

 

연암 박지원은 이때 축하 연행사의 일행으로 팔촌형을 따라

 

이곳을 방문합니다.

 

정식 연행사는 아니었고 한마디로 잘 나가는 8촌 형의 빽으로

 

그저 묻어 간 것이지요.

 

       이 때 연행사가 연경-지금의 북경-에 도착하고 보니 아뿔싸!

 

황제는 이미 여름 행궁인 피서산장으로 떠난 후였습니다.

 

       청 황제의 축하 사절단이 생일 잔치에 지각한다.

 

생각만해도 아찔하였겠지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아마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꽁지에 불이 나게 승덕으로 황제를 따라 갑니다.

 

       홍수가 나 물이 불은 9개의 강을 하루 밤새에 목숨을 걸고 건넜다는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가 씌여진 배경입니다

 

      연행사가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하여 황제를 배견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 마침 반선대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황제가 절을 하라고 하니 인사는 해야겠는데,

 

당시 조선은 철저히 불교를 배척하고 있는 상황이라 절을 하였다가는

 

      조선에 돌아가서

 

언론?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절을 못 하고 쭈저주저 하니 황제가 화를 벌컥 냈다고 합니다.

 

당연히 다리가 후들후들 털썩 주저 앉아 절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는 반선대사가 일행에게 불상을 하사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또 사단이 났습니다.

 

황제의 면전에서 아무리 중이 주는 선물이라도 받기는 받았으니

 

소중히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데

 

한양의 논객들이 임금에게 상소질을 할라치면 여간 골치가 아플 것이 아니거든요.

 

연행사 일행은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한 끝에 묘안을 냈는데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실수를 가장하여 슬쩍 강에다 빠트리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선물로 받은 불상을 실제로 강물에 빠뜨렸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이상 오래 전에 읽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관한 책 중에서

 

생각나는 이야기 한토막이었습니다. ^

 

       하여간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청황제가 반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피서산장의 水苑區

궁전구를 빠져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수원구는 

이화원의 곤명호처럼 광활하게 넓지는 않지만 몇개의 호수들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내며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연우루(煙雨樓)나 금산(金山) 같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조성하여 황제가 연회를 베풀거나 자연을 감상하고 

수렵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경원구는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지만

자연미가 그대로 느껴지게 설계되었으며

지금도 사슴이 뛰어 놀고 관광객들이 뱃놀이를 하며 자연을 즐기는 곳이다. 

호수 가운데에는 동해의 신선봉을 본뜬 3개의 섬을 쌓았으며

섬과 호숫가를 둑으로 연결해 놓았고 섬 위에는 궁전이 있고 호반에는 정자가 있다. 

동궁 북쪽 수문 위, 샤후(下湖)와 인후(銀湖)를 잇는 수로의 돌다리 위에는 3개의 정자가 있다.

 

연우루 (옌위러우煙雨樓)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강남지방을 순례할때 자싱[가흥 嘉興] 옌위러우[煙雨樓]의

 비 내리는 모습에 매료되어 피서산장에 연우루 누각을 짓게 하였다.

 1780년 착공하여 1781년 완공된 뒤 건륭제가 서재로 꾸민 청양서옥(靑陽書屋)에서

 책을 읽거나 궁녀들과 놀이를 즐기면서 비 내리는 경관을 감상하였다고 한다.  

 

2층에는 검은 바탕에 건륭제의 친필인 금박 글씨 '옌위러우'라고 새긴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빨간 기둥과 회색 기와는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칭롄도에는 뽕나무·느릅나무·소나무·은행나무와 라일락 등이 사철 푸르고,

여름과 가을이면 호수 가득 연꽃 이 환상으로 피며 연꽃향이 사방으로 퍼져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우기철이 되면 가랑비가 흩날리고 안개가 묘연하여 남다른 풍치를 더한다. 

강희제와 건륭제가 강남지방의 뛰어난 풍경을 반해서 항주모방해서

산책로를 조성했으며 넓게 펼쳐지는 수면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

다리 위의 정자, 그리고 주변의 수목들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안원묘 (安遠廟, 안위앤마오)

피서산장(避暑山庄) 북동부쪽에 있는 안원묘는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64년에 좌우 대칭으로 창건된 몽골양식의 건축물이다.

사원 내에는 3개의 정원이 제1정원은 제법 넓고

제2정원은 한(漢)과 티베트의 양식이 융합되었고 

제3정원은 70칸의 회랑(回廊)으로 구성되어있다. 

 안원묘의 중앙에는 중심건물인 푸두전[普度殿]이 있고, 평면은 '회(回)자'형이다.  

이것은 몽골족사원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도망법식(都網法式)이다.

 

보락사 (普樂寺/普乐寺)

베이징의 천단공원의 상징인 기년전[祈年殿]을 연상케하는 보락사의 쉬광거(旭光閣) 지붕에는

 빛나는 황색 유리기와를 얹었고 상층 꼭대기의 중앙에 동(銅)으로 만들어 도금한

보정(寶頂)이 우뚝 솟아 우산이 펼쳐진 모습이다.  

 

2층의 둥근 나무기둥이 누각을 지탱하는 각층마다 

12개씩 모두 24개의 나무기둥 사이에는 만다라(曼茶羅)가 있으며

중간에 동으로 만들어 도금한 남녀가 껴안고 있는 상락왕불(上樂王佛)이 있다. 

이 상락왕불은 환희불(歡喜佛-남녀교합상)이라고도 부르는데

티베트불교의 밀종(密宗)이 숭배하는 신상(神像)이다. 

누각의 높이는 23m로 2층의 안쪽과 바깥쪽에 금봉(金鳳)과 금룡(金龍)이 있으며

 3층에는 연꽃무늬를 새겼고 4층에는 여의주(寶珠)를 입에 물고 있는 커다란 용(龍)이 있으며 

이들 용봉과 연꽃, 구름 등의 조각무늬는 매우 생동감이 있으며 보기 드문 진품으로 꼽힌다. 

 보락사는 '하늘이 함께 기뻐한다'라는 의미로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66년에 창건되었다

 

보타종승지묘 (普陀宗乘之庙)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때 완공된 보타종승지묘사원은 

건륭제가 어머니 황태후의 80세 생일을 축하하여 세운 곳으로

外八廟(외팔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티베트의 포탈라궁을 모방하여 지어 (小) 포탈라궁이라고도 하는 보타종승(普陀宗乘)은

 티베트어 포탈라궁의 음역(音譯)이다. 

 

 보타종승지묘는 여러사원들이 각기 아름답고 조화롭게 어울려 있지만

그중에서도 높이 18m의 대홍대(大紅臺)는 크고 높은 현대식 건물과 다름없이

 겉모습은 그냥 평평하고 밋밋하고 다만 색깔이 특이한 건물일 뿐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回 모양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 사원이 하나 있고 그 겉을 3층짜리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그 3층 건물은 현대식의 겉모양과는 달리 전통적 양식 그대로를 따르고 있다. 

 대홍대는 현재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1층에는 불당, 2층에는 티벳 불교관련 법구,

3층에는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천막(파오)등이 전시되어 있다. 

 보타종승지묘 입구에 건립된 오탑문은 문이 3개 달린 티베트식 백대(白台) 위에

 홍(紅)·녹(綠)·황(黃)·백(白)·흑(黑) 5색의 작은 불탑을 세웠졌으며

5색은 티베트불교의 홍교·녹교·황교·백교·흑교등 5교파를 상징한다. 

 

 피서산장의  평원구(平原區)
수원구의 북쪽으로 평원구가 있고 만수원(万樹園)과 영우사(永佑寺)가 주요 볼거리이다. 

피서산장의 사리탑은 1751년 건륭제(乾隆帝) 때 벽돌로 쌓은 누각식(樓閣式)탑이다.

평면은 8각형이고, 모두 9층이며 전체 높이는 70m이다.

각 층의 처마에는 노랑색과 녹색 등의 유리기와를 얹었고, 탑 꼭대기에는 도금한 탑찰(塔刹)을 세웠다. 

 영우사 사리탑은 전체적으로 탑의 색채가 선명하여 눈에 잘 띄며,

무성한 수풀 속에 높이 솟아있어 피서산장의 표지(標識) 역할을 한다.

 

열하성황묘(热河城隍庙) 

피서산장 주변에 있는 최고의 도교사원으로 정전(正殿)에는

건륭제가 친필로 쓴 '복음암강(福荫岩疆)'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으며

사당 내에도 건륭제가 직접 지은 '열하초건성황묘념향첨례팔운(热河初建城隍庙拈香瞻礼八韵)'의

서문이 적혀있는 석비에는 열하성황묘 축조의 처음과 시작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봉추산 경추봉 ( 棒槌山  磬錘峰 칭추이펑 )

普樂寺 뒷산에 있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산으로 멀리서도 뚜렷이 보이며

 경추봉은 깎아지른 산봉우리 위에 신비하게 솟은 높이 38m 거대한 돌기둥이이다.  

단단한 돌이 아닌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바위로 큰 바람이 불면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형상이다.

  예전에 누군가 공들여 세워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경추봉에서 승덕시내와 피서산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빵추이산 전경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

 

 

성밖으로는 티벳불교인 외팔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라고도 부르고

작은 포탈라(小布达拉)궁라고도 부른다.


승덕은 건륭 35년(1770년) 건륭 60세와 황태후 80세 생일의 연희를 베풀었던곳이다.


서장,청해,신장,몽고족장들이 승덕으로 축하 해주러왓다.


두번이나 승덕에서 대 연회를 열어 건륭이 특별히 명령하여

티벳의 부달라궁을 본따 작게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티벳에서 딜라이라마가 오면 예를 갖추어 머물게 했던 곳이다.


티벳의 포탈라궁을 본따 만들어 포탈라궁이라부르며

3층위에 다시 누각을 만들었다.


다시 작은 9층탑을 두개를 만들고 그 9층탑을 사이에 두고

5층짜리 궁전을 지었다.


계단을 따라 한층한층 올라갈수 있으며 층마다 특징이 다르다.

지붕은 황금으로 만들어서 뻔쩍뻔적 빛났다.


승덕에는 피서산장 이외도 외팔묘가 있는데


이는 장족들이 전해준 티벳불교를 말하며 12개절을 지어

12개의 외팔묘가 있었으며

중일전쟁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8개의 외팔묘만 남아있다.


그중에 판첸라마를 위해서 지은 소부다라궁이 있는데

티벳의 붓다라궁을 모델로 지어서 건축양식이 비슷하며 소부다라궁이라한다.


멀리서 보면 그냥 네모만 흰 건물이지만

104개의 개단으로 올라가야만 목조건물 궁전으로 들어 갈 수 있으며

3층목조건축 성전이 나온다.


밖은 티벳의 사찰 모습이지만 일단 안에 들어서면

다시 목조로 지어져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1층에는 한번도 오지 않아 앉지 못했지만 판첸라마를 존중하는 뜻으로

중앙에 만들어놓은 방이 있고 옆으로는 티벳트의 5대 불상을 전시해두었다.


2,3층은 전시실로 이용되고 옥상으로 나가면

금빛을 칠한 황금지붕이 우리를 반겨준다.


무려 일만냥이 들어갔다는 황금지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불교의 상징인 코끼리도 황제를 맞이하기위해 무릎을 꿇고 있고

황제가 머리를 숙일수없어 다석개의 오탑를 지붕에 만들어놓았다.


 

 

 

 

 

수미복수지묘 (須彌福壽之廟)

 

 

티벳의 타실훈포사원을 모방한 이 사원은 선행궁)이라고도 하며,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80년에 창건되었다. 

건륭제의 칠순때 티벳의 지도자인 판첸라마6세가 승덕의 피서산장을 찾아와서

그의 생일을 축하해준데 감사의 뜻으로 티베트의 행정소재지인 시가체의 타시룬포사를

모방한 행궁을 짓게 하였다. 

 

이 사원은 당시 티베트 정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다민족 국가의 통일을 견고히 다지고자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는 보타종승지묘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으며

 보타종승지묘에서 보는 수미복수지묘의 경관이 매우 좋다.

이곳은 연암 박지원 선생이 티벳의 종교 지도자 판첸라마 6세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수미복수묘

뒤로 빵추이산 전경이 보인다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


우리들이 잘 아는 연암 박지원선생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야기중에 관련된

황제가 신하에게 명하여 조선사신들을 만나게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수미복수지묘이다 

 

 

 

보녕사 (普寧寺/普宁寺)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55년에 창건된 보녕사는 중간에 위치한

주전(主殿)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을 경계로 앞쪽 한족불교사찰(漢族佛敎寺) 양식,

 뒷쪽은 티베트사원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이 있는 대승지각(大乘之閣)은 普寧寺의 중심 건물로서

 주변 건물들과 함께 티베트불교의 우주관을 나타낸다.  

높이 36m의 목조 누각식 건물로 밖에서 보면 앞은 6층이고 뒤는 4층이고,

좌우는 5층인 독특한 티베트불교 건축 특유의 양식이다.

 

누각 앞쪽에는 중국어·만주어·몽골어·티베트어로 각각 '대승지각'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보령사 천수천안관음보살은 22m 높이로 소나무, 측백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삼나무 등

5가지 목재를 사용했고 연화좌(蓮華坐)위에 두 손을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등 뒤로 나와있는 40개의 손에는 각각 하나의 법기(法器)를 들고 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목조불상이다. 

 또 보녕사에 있는 마니차(法輪)  불교 경전을 넣어 놓은 둥근통으로 티베트 민중의 신앙도구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법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하여

오체투지와 함께 티벳의 대표적인 수행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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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름다운황혼열차(黃昏列車)
글쓴이 : 원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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