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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제 포로수용소 소중한 유적공원◈2019.02.20.

소촌 2019. 2. 20. 08:49


 ◈거제 포로수용소 소중한 유적공원◈

 

여기 아주 중요한 역사가 펄펄 살아 숨 쉬는 곳이 있습니다.

 절대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역사의 기록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곳.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한 바퀴 돌아   동쪽으로 향하면  뜻밖의 수확이 될만한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프고 슬프지만 기억해야 할  우리의  현대사  .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이정도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눈치 채셨겠지요. 

 60년전 흥남부두  광경을  재현 해 놓은 곳입니다.

 

기적의 배라 불리던  

메레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와 흥남철수작전

(크리스마스 카고의 영웅들))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흥남철수작전중  기적의 배로 알려진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영화같은 이야기는 이미 다양한 채널로  알려져서 잘 알고 있겠지만 ,

다시 한번 나누고 싶은 6.25 사변중의 가장 숭고하며  감동적인 

인류애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1950.12.22 오후 9시... 흥남부두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흥남부두로 몰려 들었습니다 .

  

이런 참담한  흥남의 겨울을 노래한  분도  계시죠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 보았다

금순아 ..."

현인선생님이 부르신 '굳세어라 금순아'이 노래는

  눈물로 절규하던 그 날의 흥남부두 광경을  첫소절로 택하였습니다.

 

  개마고원   바람이  미친듯이 달려들던    흥남부두의 겨울

영화 20도를 넘는 칼날추위는  매섭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고   북풍한설  추위앞에 가엾은 피난민들이  

피난보퉁이를 , 이고,지고 안고...

자유를 찾아 남으로 가는   배에

죽을 힘을 다해 기어 올랐습니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이들까지...

 이렇게 피난민을 태우는데 걸린 시간이 자그마치 16시간이 걸렸으며 

이 배에 탄 피난민은 무려 1만 4천명

배에 탄 피난민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곳곳하게 서서 사흘 밤낮을 망망대해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거제도로 향하였습니다

 

여기서 흥남철수작전을 잠깐 소개해야겠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 (12~24일)

흥남 철수 작전(興南撤收作戰)은 중국인민지원군이 불법으로 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2일에서 12월 24일까지 동부전선의 미국군 제10군단과 대한민국 국군 제1군단을 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선박편로 안전하게 철수를 성공시킨 작전입니다

1950년 11월 27일 유엔군 사령부는 중국군의 인해 전술로 인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수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에 미군 제1 해병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하는 동안, 흥남으로 집결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 부대들이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12월 24일 미군 제1 해병사단 등 마지막 철수부대가 승선할때 까지 약 20일 동안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에서 대한민국 국군 제1군단과 미군 제10군단의 병사 10만명과 차량 1만 7천대, 피난민 약 10만명과 35만톤의 군수품을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 /위키백과    

고작 선원 몇십명이 생활 할 수 있는  LST화물선에 무려 1만 4천명이나 되는 피난민을  태웠습니다

정상적으로 본다면 이건 말도 안되는  위험한 일이었죠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항해를 하였습니다.

각종 기뢰와 위험물이  곳곳에 깔려 있는 흥남항에 접안을 명령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승선을 실행에 옮긴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라루선장은  

 그날을 이렇게 생생하게 회고하였습니다. 

배는 화재의 위험마저 안고 있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힘든상항을    고민하던  중

"저 사람들을 모두 너의 배에 태우라"

는 주님의 말씀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운명의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항해도중  새 생명인

김치1,김치2,김치3,4,5가 태어나기도 하였고

 그렇게  태어 난 아이중  한 명은 신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도 ,먹을것도,화장실도 없는 배에서 오로지 서서 항해한 3일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를 지켜 준

한국인의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흥남부두의 모습

 군용선을 타기 위해서 나룻배를 이용하기도 하고...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려는 처절한 몸부림

 

 

현봉학교수 

 

현봉학박사의 고향 함흥은  캐나다의 장로교회의

 한국본부가 있던 곳으로  정치,문화  ,교육,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중요한 수력발전소가 있는 함경남도 장진호로 진격한 미해병대가

12만명의 중공군에 완전히 포위당해 미국과 전세계의 뉴스미디어에

 1950년 11월27일 바다로부터 7마일

떨어진 북한의 산악지대에 고립되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유엔군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개마고원의

 깊은 계곡에 집중포격을 가하였습니다

장진호 상항을 보고받은 맥아더장군은 알몬드장군에게

피해가 더 커 지기전에 철수하라고 명령하였고

미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봉학박사는 가까이 지내던 반공인사들과 기독교신자,

그리고 자유를 그리워하는 민간인들이 걱정되었습니다

함흥의 기독교인들은 미군 고위층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인인

그를 찾아 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으며

실제로 이들의 미래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절친한 포니대령과 이 일을 상의 했고 ,알몬드장군에게도

민간인의 철수를 건의하였습니다

"군이 우선이오 .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알몬드 장군의 반응은 미온적이었고 장군역시 제 10군단의 10만 여 

 군대를 철수할 방도를 찾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였고 게다가 민간인을

구출할 권리도, 상부로부터 받은 지시도 없었고 수송수단도 없었습니다.

남북통일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압록강을  후퇴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2월 5일 평양이 함락되었고, 함흥에 있던 제10군단 사령부가 흥남으로 철수하였습니다.

현봉학박사는  알몬드장군을 찾아 가서  줄기차게  설득하였습니다.

현봉학박사는 자신의 요구가 무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겼습니다..

절친했던 참모부장,포니대령,역사소장,쇼트소령이  그를  진심으로 도와 주었습니다  

특히 포니대령은

"우리 함께 노력 해 봅시다 나폴레옹은 그랬지요 불가능이란 없다고..."

라며

절망에 빠져 있던 현봉학박사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용기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지휘관들은 연일 머릴 맞대어   작전회의를 계속하였고 .

며칠 후 알몬드장군은  현봉학박사를 불러 함흥의 민간인 4,000~5,000명을

기차로 함흥까지 수송하라는 기분좋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포니대령은  화물선(군수송선)에 피난민을 태워 나르자는 제안도  하였습니다.

현봉학박사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짚차를 타고 함흥으로 달려 가서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사람들은

 "모세가 나타났다"

고 소리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 날 밤 함흥역에서 미군이 약속한 4,000명의 10배가 넘는 5만명 이상의

 함흥시민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와 일대 아수라장이  벌어졌지만

다음 날 새벽 2시30분이 되어서야 겨우   4,000명은 태운  기차는   떠났고

기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산길과 논길로 걸어서 흥남부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명예로운 후퇴가 시작되었습니다  

출 애굽기에 비교되는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 낸  현봉학박사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해 낸  구원자였습니다. 

 

 알몬드 장군

흥남철수작전의 총사령관으로

LST화물선에  철수하는 군병기류를 몽땅 버리고 대신  피난민을 태우게 명령 내린

훌륭한 분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놔 두고 갈 수 없다 이 사람들을 모두 구출하도록 하라"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이렇게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오로지 인류애로...

 

포니대령 

흥남피난민들을 화물선(메레디스 빅토리호)에 태우자고 강력하게 제의하여

피난민 탈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당시 10군단 민사담당 

 고문관이었던 현봉학교수에게 제시하였고  사령관인  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여 

 기적의 배로 알려 진 메레디스 빅토리호(군장비와 약간의 군인을 태울 수 있는)에  

 1만4천명의 피난민을 승선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2만여  중공군의 포위를  기적처럼 뚫고

장진호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흥남부두에서 10만여명의 피난민들의

 피난을 적극적으로 도운

장군입니다.

1950년 8월 21일  아침, 팬들튼으로 출두명령을 받고 2시간 뒤 미 제 7해병연대

대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때  대대요원은 불과 수명밖에 없었고, 대대막사로 가서

대대장으로서의 첫번째 훈시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훈시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잘 말해주는 대목으로

"1개 대대를 편성하는데 1주일의 여유 밖에 없다

우리의 생애에서 이와같은 중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는것은 그렇게 흔히

있는 일이 아닐것이다

하루는 24시간뿐인데 우리는 그 24시간을 전부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한달후에 이 대대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헤이그 보좌관

 

 "그들이 적국국민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문제 되지 않는다"

 1군단장 부관이었고 훗날 미국무장관을 지낸 헤이그씨가 한 말입니다

'그 일은 무엇과도 비교 될 수 없는 인간생명 본연의  문제라는 것'

자유를 찾아 남으로 ...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한 피난민들에게

거제도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먹을것을  주었고

더불어 사는 온정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맥아더 장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1950년 7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출하였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의 결정을 내린 최고 책임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

명연설을 남겼습니다.  

 

김백일 장군 

 

김 백일 장군의 흥남에서 있었던 유명한 일화하나를 소개 해 보고 싶습니다.

여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녀들이

지프차에서 내리는 군인을 보고

다급하게

 "살려 주세요"

라며  눈물로 애원하였습니다

장군은 즉석에서 그녀들에게  도와주겠다고 언질을 주었고 곧장 사령부로 돌아가서

 60벌의 군복을 가져와서

여학생들에게 입도록하여 부대원속에 포함시켜 데려 온  드라마같은

   일을  아름답게 해 냈습니다

흥남부두에서 그가 한 말은 가슴속으로  뜨거운 동포애가 기어드는 말입니다

"  만약, 미군이 피난민을 두고 간다면 국군이 엄호하면서 육로로 후퇴하겠다"

라고 알몬드장군에게 강력하게   건의하여  피난민들을 배에 태울 수 있게 간청하게 된 장군

1950년 10월 1일 한국군 제1군단장으로  38선을 가장 먼저 돌파한  용감한  군인이었습니다. 

박시창 대령 

 

광복군 지휘관으로 항일투쟁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6.25전쟁이 터지자

군에 입대하여 흥남철수작전에서

민족을 사랑하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호,통제하여 안전하게 거제도에 안착하는데 크게 기여하신 분입니다.

유원식  소령

 

 김 백일 장군의 민사참모로 북한의통치 상황을 파악하는 식견과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로 김백일 장군을 도와서

흥난철수작전에서 피난민을 구하는데 공을 세운 분입니다. 

레너드 라루선장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으로 1만 4천명의 목숨을 건진 일등공신이며

크리스마스 카고의  영웅입니다.

그날, 메레디스 빅토리호에 탔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할 생명의 은인입니다.

 

흥남철수작전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인류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제도에서 터 잡았으니  이제  가끔씩  찾아가서 그날을 회상해 보는것도

기분좋은  일이 될것입니다.

러니 간부장

그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는 흥남의 겨울은 영화20~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서  어른들은   병아리같은 아이들을 꼬옥 껴안고 따스한 온기로  품어주는  

모습과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던 처량한 모습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북풍한설 모진 바람이 살을 에이는 추위에 맞선  뱃전의  풍경을 생생하게 

  써내려간   편지를 받은 어머니도

 눈물이 앞을 가렸겠지요.

헌신적인 인류애를 발휘해준 

크리스마스  카고의  영웅들, 그대들이 있었기에 자유를 찾아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오늘이 존재할 수 있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카고의  영웅들 ...  

에드워드 포니

한국전의  영웅인 그의 한국사랑은 대단하여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에 들어와서

해병대 고문으로 해병대 교육을 담당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1965년에 타계하셨지만

현봉학박사는 포니가와  대를 이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소식에 흐뭇합니다

특히 포니의 증손자 벤포니는아버지로부터 들은 할아버지께서 참여한 

 6.25전쟁이야기를 듣고 한국사랑의 대를 이어  현재 목포의 영흥중학교에서  원어민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산낙지까지 즐겨 먹을 줄 아는 그는 이제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재미난 소식과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유적고원내에 설치한 흥남철수작전의 모형물과

화강암에 새겨진 조부의 활약상과 모습을  직접 찾아와서 느낀 감동은 어떠하였을지.

 

박시창 

현봉학 

  

모두가 자랑스런 영웅들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기적의 배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세계역사상 유래없는 1만4천명의 피난민을 태워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로버트 러니대령과 한국인 안재철씨가 노력한 결실입니다.

미국에서는  이 배의 철수작전만을 담은 < Ship of Miracles/ 기적의 배.  빌길버트>

 책도 출간되었습니다.

 

기적의 배로 불리던  이 배는   한 때 퇴역했다가 월남전에 다시 동원되어 임무를 다한 후 ,

고철로 팔려 중국의 어느 항구에서 1996년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민족은 이런 멋진  기적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였습니다 .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조형물이 아닌  실제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어 주었더라면

민족의 자긍심이 되었을것을... 

 

이 땅 , 거제도는   흥남철수작전과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활약상과 , 

크리스마스 영웅들의 이야기와

흥남피난민들의 이야기와 포로들의이야기로 넘쳐나는 구국의 고장, 역사의 고장입니다. 

어느 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이 곳에

찾아와서  

흥남피난민들을 따스하게  맞아 주고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준

거제도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공덕비를 건립 해 주었습니다.

감사할줄 아는 그들에게

 거제도는 함경남도 사람들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어 주었습니다. 

 공적비에 새겨진

백성학  (주) 영안그룹 회장님의 이야기는 미국의 잡지 '리더스다이제스트'에도

소개 된 적이 있습니다

흥남부두에서 피난민들속에 버물려 생각지도 않은 피난민이 되어야 했던 11살 소년,

북녘땅을 떠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피난을 떠나려는

이웃들에게 흥남부두로 빨리 떠나라는 심부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만 부두에 모여든 사람들에 떠밀려 배를 타고 말았던 소년 백성학

그리고 혈혈단신 고아가 되어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 노릇을 하며 눈물짓던 아이에게 동생처럼

보살펴 준 빌리(비티)라는

미군을 성공한 후  찾아가서  은혜를 보답하려 하였지만

그의 아들은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느냐며 도로 의아해

했다는 흐뭇하고 훈훈한이야기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6.25사변이  맺어 준 인연  

함경도사람들은  거제도사람들에게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였습니다.

은혜를 아는 멋진 사람들.  


함흥철수작전시 난민을 도와주신

 거제시민에 대한 은덕비를 ?  

같은 동포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못하였지만

전쟁이 남기고 간  교훈또한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무형의 자산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된 조국이었습니다

어느 날, 질 나쁜 인간의 권력욕심이 불러 일으킨 전쟁으로 허리가

잘려 남북이 나뉜지 60년,  .

누구라도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방문하게 되면  꼭 동쪽으로도 발길 돌려  보세요 ^^* 

 가서 보게 되면

"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것입니다."

  라고 말하게 될것입니다.



◈아름다운 황혼열차◈

-카페지기 석양노을-


출처 : 아름다운황혼열차(黃昏列車)
글쓴이 : 석양*노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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