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성공◈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B0%F8%B0%DD%C0%FC%C0%C7_%BF%F9%B9%CC%B5%B5%C0%FC%B0%E6.jpg)
윗쪽의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있고, 오른 쪽 아래의 방파제는 소월미도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1950년 9월 14일 밤 2시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19척의 선발함대가 종대로 줄을지어 팔미도의 등불을 신호삼아
인천 앞바다로 진입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의 서막이 올려지는 순간이지요.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B1%D7%B8%B0%BA%F1%C4%A1%BF%A1_%B4%EB%C7%D1_%B7%CE%C4%CF%B0%F8%B0%DD.jpg)
1950년 9월 15일, 새벽 5시 정각.
공격개시명령을 받은함포의 포문이 열리고 코르세어 함재기들이
월미도를 향하여 날아가 격렬한 포격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해병대 병사들은 상륙용 주정으로 옮겨타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6시 27분,
미 해병 제 1사단 5연대 3대대 병력이 17척의 상륙용주정에 분승하고 9대의 탱크를
실은 3대의 대형 상륙주정도 함께 월미도 해안(그린 비치)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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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코주부"장군이 작성한 작전도를 보아 주십시요.
"월미도"는 인천항을 외곽에서 둘러싸고 호위하는 형상을 하고있는 섬으로서
육지와는 방파제로 연결되어있고, "소월미도"와도 작은 방파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의 제 1파는 바로 월미도...지금의 문화의 거리가 형성되어있는
해변에 상륙하였는데 이 위치의 작전명은 "그린비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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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쏘아대는 기관총 사격을 받으며 해안에 상륙한 미 해병대는 1개 소대를 기관총이
날아오는 "소월미도"로 진격케하고 일부는 산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 올라가며,
다른 일부가 섬을 좌로 돌아서 인천시내와 연결된 방파제 입구까지 전진하여 인천 방향에서
몰려올지 모르는 북한군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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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파제가 바로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도로이며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지금의 '대한제분'이 있는 위치로서 작전명"래드비치"...금일 저녁의 상륙목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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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의 주력은 바로 월미산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 올라가서 섬에서
동굴을 파고 저항하던 북한군 병력을 섬멸합니다.
이 섬에는 약 400명의 북한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108명은 사살되고, 136명이 포로,
나머지 병력중 100여명은 동굴에서 저항하다가 매몰되어 사라졌습니다
.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imc9.jpg)
미 해병이 월미도에 대한 소탕을 완료한 시간이 대략 오전 8시,
이제 그 유명한 인천의 간조로 인하여 바닷물이 멀리까지 빠져나가 저녁 때 물이
다시 들어올 때 까지 바다로부터의 지원은 없으므로 인천으로부터 북한군이 몰려오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진지를 구축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logfile%2Ffs1%2F10_24_16_12_04doK_IMAGE_0_25.jpg%3Fthumb&filename=25.jpg) 월미도에서 사살당한 북한군 시체들
오후 4시 45분 만조가 시작됨.
만조가 시작되자 미 해병대의 제 2파가 상륙을 개시하여
미 해병 제 5연대는 17시 33분에 북쪽해안(래드비치)..지금의 대한제분공장자리...에 상륙을
개시하고,
미 해병 제 1연대는 17시 32분에 인천항 남쪽 송도해안(불루비치)에 상륙을 감행합니다.
다시 "<코주부" 장군의 작전도를 참고하여 주십시요.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imc2.jpg)
작전도와 같이 미 해병 5연대의 1,2 대대와 자랑스러운 우리 해병 제 1해병연대 제 3대대의
병력은 북쪽의 "래드비치"로 상륙했으며, 미 해병 1연대는 인천의 남측 송도 방향의 "불루비치"로
상륙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 항공 사진으로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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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저녁 5시 30분에 "래드비치"와 "불루비치"로 달려가는 상륙용 주정의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월미도의 상황은 이미 끝나서 "래드비치"로 이어지는 방파제를 따라서 탱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며 '자유공원"을 폭격하는 미 해군의 코르세어 공격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천에 침투해 있던 국군의 첩보조직은 자유공원에 4개소의 방공포대가 구축되어있음을 알려주었었죠.
당시의 인천의 외항과 내항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데 인천항은 교두보가 확보되면
대량으로 물량이 하역될 "옐로우 비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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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 비치"로 달려가는 미 해병대...."래드 비치"는 방파제로 둘러쌓여 있으므로 이 사다리는
방파제를 올라가기 위하여 방파제의 높이에 맞추어 제주도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입니다.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imc7.jpg)
과연! 사다리를 이용하여 방파제를 올라가고 있는 미 해병과 한국 해병대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이 때 인천 역 방향에서 기관총 사격이 날아오며 저항이 있었으나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 방향에서 달려오던 북한군 병력은 미군기의 워낙 거센 폭격에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logfile%2Ffs4%2F10_24_16_12_04doK_IMAGE_0_30.jpg%3Fthumb&filename=30.jpg) 상륙성공후 월미도에 접안하여 물자를 하역중인 LST 함들.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imc19%5B1%5D.jpg)
다음 날 아침 .."래드 비치"로 상륙한 한국 해병대 3대대 와 "블루 비치" 방향으로 상륙한
해병대 1대대의 병사들은 미 해병대의 병사들과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에 나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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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logfile%2Ffs2%2F10_24_16_12_04doK_IMAGE_0_40.jpg%3Fthumb&filename=40.jpg) 생포된 북한군 포로들이 방파제에 모여있다.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75/575/1/imc24.jpg)
9월 16일, 인천이 완전히 아군의 수중에 들어오자 인천항(옐로우 비치)을 통하여
미 육군 제 7사단의 병력과 한국군 제 17연대의 병력이 상륙하여
서울로 공격할 준비를 갖춤으로서 역사에 남는 인천상륙작전은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인천 시내에서의 북한군 포로색출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logfile%2Ffs4%2F10_24_16_12_04doK_IMAGE_0_27.jpg%3Fthumb&filename=27.jpg)
상륙작전의 성공 후 인천항(옐로우 비치)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과 해병 1사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