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첩채산에선 남쪽으로 1㎞ 떨어져 있다.
독수봉(獨秀峰)과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육지와 맞닿아 있고,
동쪽에는 이강이 흐르고 있다.
'복파산'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복파장군의 묘가 세워진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복파장군(BC14~AD49)은 후한 광무제 때의 유명한 장군으로 마원(馬援)이란 사람이다. AD41년에 복파장군으로 임명되어 남방의 교지 지금의 베트남의 반란을 평정하였다고 한며 AD46년에 다시 남방의 무릉밀을 토벌하러 출정하였다가 열병으로 진중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복파장군은 사후에 삼국지에 등장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한나라가 위촉오의 3국으로 분할되어 유비가 촉나라를 차지하고 있을 때에 후방에서 자주 반란을 일으키는 맹획을 정복하기 위하여 제갈공명이 남만으로 출정하였을 때의 이야기이다.
맹획을 군사적으로 제압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감화시키기 위하여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을 할 때인데 한 번은 제갈공명의 군사들이 밀림속의 독수(毒水)를 마시고 말을 하지 못하는 병에 걸리게 되었다. 제갈공명이 근처를 살피니 하나의 사당이 있는데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복파장군을 모신 사당이라고 하므로 공명이 가서 정중히 제를 올리고 지금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니 신선이 나타나 독수를 마신 군사들을 치료할 방법과 독수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을 방법까지 일러주어 무사히 맹획을 정벌할 수 있었다는 대목이 있다.
정상에서 보는 풍경
색종이를 오려 관광객의 실루엣을 만들어 주는 아저씨
한국에 초청되어 TV에도 나왔다고합니다.
나의 실루엣